▲ 김한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기초공천 결정' 입장표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소신과 철학 관철하는 ‘가치의 정치’ 실종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선거 공천폐지 약속 불이행으로 촉발된 정치권 공방은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의 여론조사 결과 공천 53.44% 대 폐지 46.56%로 공천해야 한다는쪽으로 일단 결정이 내려졌다.집권 여당의 약속 불이행으로 빚어진 논란이 제1야당의 여론조사를 통한 입장선회로 일단 종지부를 찍게됐다.새정치민주연합은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한 실익을 어느정도 챙기게 됐다.

상황이 어떻든 입이 열개라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대선공약을 줄줄이 파기시켜 온 것에 대해 할말이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 바뀌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 못하고 마냥 약속을 지키라고 비판하는 야당이 잘못된 것처럼 ‘발목잡기’니 ‘생떼’니 하면서 오히려 역정을 내왔다.

새정치 실익을 챙기게 됐지만…

그래서 제1야당 민주당은 지난 3월2일 일요일의 충격,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이 전격적인 통합을 발표하여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을 탄생시켜 ‘거짓의 정치’와 ‘약속의 정치’로 선명한 구도를 만드는 정치력을 발휘하였다.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대선공약 ‘파기의 정치’와 민주당과 안철수위원장의 ‘약속이행의 정치’가 ‘새정치’로 재탄생하면서 국민들은 선과 악을 보다 선명하게 알 수 있게 됐던 것이다. 명분있는 정치적 결단은 통합신당 지지율의 급상승으로 이어졌다.

여권과 새누리당이 ‘정치적 야합’이라고 수없는 비난을 했지만, 대체적인 여론은 바로 이런 것이 정치의 생명이고 정치 지도력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듯 했다. 이후 안철수, 김한길 대표는 거침없는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지만 무공천에 따른 새정치민주연합의 새정치 실험은 지방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또다시 선거결과에 ‘절망’이라는 ‘예측’이 휘몰아 친 것이다.

무공천으로 인한 제1야당의 기반 붕괴 가능성에 대한 당내의 압박으로 김한길, 안철수 양 대표는 또 다시 결단을 요구받았고 양 대표는 여론조사를 통한 사실상의 ‘재신임’을 국민과 당원에게 맡겨야하는 상황을 받아들인 것 이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결론은 무공천으로 인한 피해는 불공정한 것이기에 여론은 공천에 힘을 실어주었다. 제1야당의 소신과 새정치와 통합의 상징이었던 약속이행은 국민여론을 등에 없고 접게 된 것이다.

한국 현대 정치사, 아니 최근의 정치현장에서 여론조사는 언제부터인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무현-정몽준 대선 후보 단일화, 문재인-안철수 대선후보 단일화 등 큰 선거에서부터 최근 새누리당의 서울시장,제주도지사 선거 그리고 동네 구의원 선출하는 작은 선거에서까지 여론조사는 정치인의 운명을 가르는 가장 과학적, 객관적 잣대가 된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의 성격은 김한길, 안철수 양대표의 정치 지도력과 사실상의 재신임 여부였는데 두 사람은 당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여론조사 실시를 받아들인 것 같다.문제는 여론조사가 과연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은 정치현장’에서 ‘만능 해결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다. 여론조사상의 기법이나 의도성에 따른 결과 등 여론조사상의 전문적인 분석과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여론조사가 모든 정치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또 다른 모습이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되새겨 볼때이다.

현대정치가 ‘여론의 정치’,‘정치의 여론화’ 라는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민주적 절차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가진 수단이고, 여론조사와 여론을 추종한 그 결과도 추구하는 목적에 가장 근접한 근사치를 제공해왔다는 역사적 경험과 사실들 앞에선 여론정치의 위력을 부인할 수 는 없다

특히나 ‘위기와 결단의 순간’에 선 정치지도자들은 수많은 참모와 전문가, 국민여론을 참고하지만 결국 최종 결단은 정치적 가치와 지향점을 기준으로한 판단과 결단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극단적인 얘기이지만 전쟁불사를 외치며 덤벼드는 적군 앞에서 지도자가 여론조사로 전쟁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많은 정치현안과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이슈들이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여론조사는 지도자와 정당의 결단을 내리는데 참조용일뿐 그 자체가 나침판은 아닐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와 여론만 따라 간다면 역사는 항상 성공만을 기록해왔겠지만, 현실이나 결과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사례는 너무도 많다. 정치지도자의 결단이 때로는 실패를 초래해도 ‘가치’로 인류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사례도 많다.

약속 불이행 당사자가 승자가 되는 현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여론조사를 통한 공천 선회는 궁극적으로 대선공약 불이행 정국이 초래한 불가피한 ‘비정상의 정상으로의 복귀’이지만, 흠 잡힐 정치 지도력의 또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불이행의 당사자인 집권여당이 가만히 앉아서 승자가 되고 약속이행 당사자인 야당은 도덕성과 대의명분만 주장하다가 주저앉을 판이기에 여론은 ‘공정경쟁’이라도 해야 한다고 선택한 것이다.새정치민주연합은 이제 공정경쟁의 명분과 룰을 스스로 만든 만큼 선거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제 누구를 탓할 것은 없다.

정치판에서는 옛날부터 내려 오는 농담중에 ‘지도자는 지도와 자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지도자의 역량과 리더쉽은 ‘여론 추종’보다 ‘여론 선도’가 기본이라는 지적일 것이다.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갈 길을 제시하고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고비에는 무엇인가에 의존하고자 하는게 정치지도자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본성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해답이 든 교과서’를 들고 따라 오라는 정치보다, 미지의 세계이지만 ‘소신과 철학을 내세운 리더쉽’ 을 더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민들과 역사는 정치에서 그 무엇보다 ‘지향하는 가치’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박동규 한반도미래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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