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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17 17:51
박동규 대표 친일청산 관련 언론 인터뷰
 글쓴이 : 행정실장
조회 : 1,281  
"친일 청산을 연좌제로 이해해선 안 돼"
박동규 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인터뷰
2009년 12월 22일 (화) 박지순 기자 beatles1997@sisaon.co.kr

지난 17일 박동규 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47)을 만나 최근에 다시 일고 있는 친일 논란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친일 논란은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해서 소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끼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사회에서 친일 청산은 두고두고 논란의 대상이다.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자마자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척결하기 위해 헌법기구인 ‘반민특위’가 만들어졌지만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의 습격을 받아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고 말았다.

헌법에 근거해 구성된 국가기관이 공권력에 의해 무력화됐다는 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 세력이 어느 정도 득세하고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을 자신이 승인했다고 인정함으로써 친일파 세력을 끌어안고 정부를 수립한 태생적 모순을 암시했다.

이후 ‘친일파’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이에 대항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알고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누구나 학창시절 놀랐던 기억 중에 하나가 교과서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와 학자, 정치인으로 소개된 인사 중 상당수가 친일행적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민간기구인 민족문제연구소와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각각 친일 인사 명단을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친일 논쟁에 휩싸였다.

연구소와 위원회에서 발표한 친일 인사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방응모 조선일보 전 사장,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자 등 현재도 그 후손들이 한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실제로 이 후손들은 법적, 사실적으로 친일 명단 발표에 반감을 드러냈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는 ‘친일을 한 적이 없다’고 아예 친일 사실을 부정하거나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친일행각을 시대적 상황 탓으로 돌리는 것 등이다.

▲ 박동규 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은 "친일청산이 연좌제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시사오늘


박동규 전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이 명예롭다”

박 전 사무처장의 아버지 박주대 선생(1924~2000)은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다. 박 전 사무처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한 사람으로서 명예롭게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친일 논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일제시대에는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근거로 친일을 합리화하는 움직임에 대해서 어느 시대나 그 시대 상황이 있겠지만 “앞장서서 일제를 찬양하고 합리화하는 적극적 친일인사들은 특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반박하고 “목숨까지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도 계시다”는 말로 친일이 시대적 상황에 의해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박 전 사무처장은 그의 아버지가 어떻게 독립유공자가 됐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며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의 문제와 나아갈 점도 제시했다. 박주대 선생은 1940년 일본으로 유학해 수필 동인지 ‘금강산’을 통해 항일 운동을 벌였다.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퇴학과 입학을 반복하다 강제추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일제에 의해 강제징집당한 박주대 선생은 만주로 끌려간 후 동료들과 탈출을 감행 광복군에 들어갔다. 해방 후 고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말라리아에 걸린 몸이 ‘쇠꼬챙이처럼’ 된 채였다. 박 전 사무처장은 “아버지가 편하게 살려고만 했으면 일본 유학파 엘리트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행한 역사 반복 막는 것이 진정한 친일 청산

박주대 선생은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수년 간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입증하기위한 자료를 백방으로 찾는 노력 끝에 1990년 애국지사가 됐다.

당시는 애국지사로 인정받기 위해 사비를 들여 발로 뛰어다니며 자료를 찾아야 했다고 한다. 박 전 사무처장도 시간을 쪼개 아버지의 광복군 활동을 증명하는 자료를 찾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아버지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이후에야 연금과 자녀 학비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졌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국가의 보훈 기능이 강화돼 독립운동 증명도 국가가 일정부분 돕고 있다고 한다.

박 전 사무처장은 독립 애국지사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친일논란을 정치적,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고 균형 잡힌 모습을 보였다.

그는 “친일 청산작업이 우리사회의 또 다른 연좌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엄정하게 밝혀 그 사실을 근거로 친일 행적을 한 당사자나 일제가 가한 피해를 확인하고 후손들의 반성과 민족 앞에 보다 겸허한 자세를 촉구하고 불행한 역사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친일 청산”이라는 것이 박 전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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