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농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경기가 각자 몇개는 있기 마련입니다.
저역시도 그러한데,
하나는 서장훈이 목을 맞고 실려나갔던 94-95 농구대잔치 연세대 vs 삼성전자 경기이고
손이 부러지고 눈이 찢어진 허재가 끝까지 하드캐리해서 준우승했던 기아 vs 현대 챔결입니다.
둘다 제가 응원하는 팀이 졌고,
서장훈이 쓰러졌을때, 허재 눈에서 피가 흐를때 정말 서럽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제 본 챔결 7차전도 이제 제 평생 기억에 오래 남을거 같습니다.
작년에도 SK는 챔결에 올라 우승도 했었지만,
올해는 같은 챔결도 작년과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솔직히 올해는 챔결 기대 안했었습니다.
작년 통합우승할 당시의 SK와 지금의 SK는 다른 팀입니다.
작년 공수 핵이었던 양 주전 포워드가 사라졌기 때문에
작년보다 얇은 뎁스로 작년과는 다른 농구를 해야 했던 상황이니까요.
시즌 시작후 전반기도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감독님과 선수들이 합심해서 결국 막판 플옵 포함 16연승을 일구어냈고
그 덕분에 챔결까지 올라왔고..
이왕 질거 그냥 일찍 탈락했더라면 아쉬움은 덜했으려나요.
7차전 그것도 연장까지 가서 아깝게 패배하니 아쉬움도 더 큰거 같지만
경기가 끝나고 나서 느낌은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너무 아쉽긴 했지만 분하지는 않았습니다.
중요했던 몇몇 승부처에서 득점을 했더라면,
그때 파울만 아니었으면,
마지막 14초 남겼을때 그냥 김선형이 득점했더라면..
아쉬운 장면들이 순간순간 지나갔으나
경기가 끝나고 생각나는건 그 순간순간의 아쉬움보다
한 시즌 내내 고생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감독님과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7차전 경기가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여태 직관으로 본 경기들 중 최고의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7차전 끝장승부도 모자라 연장전까지 갔던
SK의 챔피언도전이 아쉽게 3점차로 끝났습니다.
종료버저가 울리고 축포가 터지는 순간
눈물샘이 터졌습니다.
20년전과 달리, 제가 아니라
같이 경기를 보러온 제 딸의 눈물샘이 터져버렸습니다.
SK 유니폼을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던 열살짜리가 닭똥같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아빠아 ㅠㅠㅠ 이제 나 안양에는 절대 안올거야아 엉엉엉엉 ㅠㅠㅠㅠ"
정작 저는 괜찮았는데, 아이는 안그랬나 봅니다.
20년전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
아마 이제 앞으로 제 딸이 저보다 더 열심히 우리팀을 응원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교롭게도, 서장훈이 쓰러졌을때 그전에 연세대는 농구대잔치 우승을 했고
허재가 처절히 분투하던 그전해 기아엔터프라이즈가 우승을 했습니다.
어제 저희딸은 팀의 패배를 지켜보며 처절히 울었고, 그전해 SK가 우승을 했네요.
이게 운명이었나 싶기도 합니다. 크크
우승한 KGC 그리고 팬분들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세근 선수 진짜 아직 죽지 않았고, 작년과 다른 스펠맨... 너무 대단했고
양희종 선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서 너무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배병준... 속쓰리네요. 작년에는 우리팀이었는데 왜 하필 7차전에 터지냐고오... ㅠㅠ
그리고 우리팀, 7차전 경기 시작할때부터 연장 종료 부저가 울리는 순간까지
공 하나하나 집중하며 체력이 다한게 눈에 보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어준 선수들에게
그리고 여기까지 선수들을 이끌어준 감독님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김선형은 진짜 레전드입니다. 아마 7차전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듯 하네요.
전희철 감독님 고맙습니다. 이번엔 비록 졌지만, 앞으로 오래오래 강한 팀을 만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올시즌이었습니다.